스크린은 컨닝페이퍼다 – 설명이 아닌 설득으로 바꾸는 발표 기술
프리젠테이션은 화면 설명이 아닌 청중 설득이다. 화면을 보는 순간 청중 시선도 화면으로 향하며 설득력을 잃는다. 화면은 발표자가 훔쳐보는 컨닝페이퍼일 뿐, 청중과의 눈맞춤을 통해 시선을 사로잡고 분위기를 통제하는 설득형 발표 기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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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박 주임이 이어서 프리젠테이션해 봅시다.” 이 실장의 짧은 한 마디에 박 주임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고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한다. 대학원에서 연구 과제를 자주 발표해본 적이 있는 박 주임은 프리젠테이션이 사실 그리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다. 매 학기마다 매 과정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는 일상화되어 있으니 지금의 프리젠테이션 연습이 솔직히 별 감흥이 없다. 이 실장의 지시에 놀라기는 했지만 프리젠테이션은 얼마전까지 대학원에서 일상적인 삶이었다는 것을 박 주임은 되새긴다. 좀전의 차 주임과는 입장이 다른 셈이다. 자신감 하나로 뭉쳐진 삶을 살아 온 박 주임이다.
언제나처럼 박 주임은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한다. 평소에 배운 대로 화면의 왼쪽 구석에 서서 몸이 화면을 가려 청중이 화면을 읽지 못하는 그런 실수도 박 주임은 용납하지 않는다. 또박 또박 화면에 올라와 있는 내용을 하나 하나 ‘설명’하고 있다.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프리젠테이션은 3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있고 이 실장은 갑자기 이 분위기를 뒤집는다. “박 주임, 그만, 거기까지.”
박 주임을 비롯하여 팀원들은 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기획서 작성법이야 모두들 신입에 가까운 박 주임보다 월등하지만 프리젠테이션 기술만 따진다면 어쩌면 지금 발표한 박 주임보다 누가 더하고 못하고가 없는 상황 아닌가?
이제 이 실장이 설명한다.
“박 주임 발표는 잘했습니다. 지금 무리없이 발표한 박 주임은 성공적인 인포머티브 프리젠테이션의 모범을 보여준 것입니다. 대부분 프리젠테이션은 박 주임처럼 하도록 교육 받죠. 화면 한 쪽에서서 화면을 몸으로 가리지 않고 청중이 박 주임의 설명을 무리없이 따라갈 수 있도록 진행하는 이런 방법을 보통 프리젠테이션 실습에서 교육받습니다. 그런데 제가 뭐라고 방금 그랬죠? 박 주임의 ‘설명’이라고 했죠?
‘설명!’ 무슨 말인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배워야 하는 프리젠테이션 기술은 장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고 그랬잖아요. 청중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언제나 청중을 향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가장 형편없는 프리젠테이션은 화면에 나와 있는 내용을 하나씩 또박또박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설명이 아닌 설득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청중의 시선을 화면이 아니라 우리에게 집중시켜야 합니다. 화면이 아닌 프리젠터에게요. ‘프.리.젠.터’에게… 즉, 발표자가 화면을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청중의 시선도 화면에 머무르게 되죠. 이는 화면의 내용을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지만, 화면의 내용을 설득하는 방법은 아니죠. 우리는 화면을 절대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
화면을 보지 말라? 갑자기 임 차장은 예전 직장에서 이 실장의 강의를 듣고 와서 동료였던 오 과장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임 차장님, 이 실장님 강의 들어 보셨어요? 재밌어요. 그런데 이 실장님은 화면을 안 보더군요.”
임 차장은 호기심이 일어 이 실장의 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다. 정말 이 실장은 화면을 보지 않고 강의를 진행했다. 그때 뭔가 느낀 임 차장은 그날 이후 마찬가지로 화면을 보지 않는다. 지금 이 실장의 프리젠테이션 기술과 가장 비슷한 팀원은 바로 임 차장이다. 임 차장은 이 실장에게 직접적으로 프리젠테이션 기술을 배운 바는 없지만 가끔은 서로 같은 방법으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는 것을 알고 있다. 임 차장의 프리젠테이션은 이 실장의 입장에서 결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화면을 보지 말고 어떻게 발표를 하라는 것인가? 발표할 내용을 다 외어서라도 발표하라는 것인가?
“청중의 특성을 이미 설명했죠? 그러한 청중을 우리편으로 설득하여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눈맞춤(Eye Contact)입니다. 청중과 눈을 맞추는 것, 청중을 향해서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죠. 청중이 화면이 아니라 발표자를 향해서 시선을 돌리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눈맞춤은 가장 중요한 사람 즉, 심사위원이나 미팅 호스트에게 집중하되 다른 청중에게도 시선을 모두 주어야 합니다.
청중이 아주 많은 자리인 경우에는 맨 뒤의 벽 가운데를 잠시 보아도 됩니다. 그러면 청중이 많은 경우에는 자신을 보고 있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청중이 많지 않을 때는 한명 한명 지나가는 눈길을 주어도 충분하죠. 눈맞춤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현재의 분위기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리젠터가 발표를 하는데 발표 문서를 보고 있거나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등 주의가 산만하다면 프리젠터는 바로 그러한 분위기를 바꿔야 합니다. 발표 문서를 보고 있는 경우라면 이미 발표의 시작이 엉성하게 진행되었다는 반증입니다. 청중은 언제나 발표자만을 보고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잠시 5초 동안 침묵하거나 목소리의 톤을 낮추거나 또는 말 중간을 잠시 끊어 긴장감을 주는 형식으로 시선을 다시 발표자에게 돌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선을 다시 획득하면 발표를 진행해야 하죠.”
사실 눈맞춤이야 대학 시절 프리젠테이션 경험이 있는 팀원이야 다 아는 내용 아닌가? 하지만 눈맞춤이 왜 중요한지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새삼 눈맞춤의 중요성을 이해하니 예전과 느낌이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 화면을 보지 말라고 하고서는 왜 눈맞춤을 설명하는 거지? 눈맞춤을 위해서 화면을 보지 말라는 것인가? 그건 좀 ‘오버’하는 것 같은데? 이 실장의 설명을 좀더 들어야 할 것 같다.
“결국 프리젠터에게 시선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발표자는 발표 내용을 읽거나 설명하는 대신에 발표 내용을 조목 조목 설득으로 유도하는 것이죠. 그러면 발표의 분위기는 설명이 아니라 연설에 훨씬 가깝습니다. 그래서 설득형 프리젠테이션을 가장 잘 설명하는 참고도서는 프리젠테이션 이론서가 아니라 대부분 스피치(Speech) 이론서입니다. 문제는 화면을 보지 않고 어떻게 발표자가 설명할 내용을 조목 조목 설득으로 유도하는가 하는 것이죠. 그럴 때 화면을 보는 것입니다. 즉, 화면은 발표자가 어떤 내용을 설득해야 할지 모를 때 훔쳐보는 ‘컨닝 페이퍼’이지 청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컨닝페이퍼를 훔쳐보지 않는 것이 좋겠죠? 컨닝페이퍼를 훔쳐본다는 것은 그 시간만큼 청중의 시선을 또 놓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가급적 그 컨닝페이퍼마저 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발표 내용을 다 외우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묻겠죠? 비법이 있습니다. 그건… 앞에 놓인 노트북 컴퓨터를 보는 겁니다. 벽에 걸린 스크린의 내용이 아니라 앞에 놓인 노트북의 화면을 훔쳐보는 것이죠.
화면을 절대 보기 말 것. 화면은 컨닝페이퍼라는 것을 명심할 것. 고객의 시선을 발표자로부터 잠시라도 떨어지게 만들지 말 것! 자, 다음…”
핵심 정리
- 화면은 설명 도구가 아닌 발표자의 컨닝페이퍼다. 청중 시선을 발표자에게 집중시켜야 설득력이 생긴다.
- 눈맞춤을 통해 청중의 반응과 분위기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통제한다. 주의가 산만하면 즉시 시선을 되찾아야 한다.
- 설명이 아닌 설득이 목표다. 화면 대신 청중을 향해 말하며 스피치에 가까운 발표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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