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도 갑을 평가한다 -고연봉 인터뷰 주도권을 잡는 상호 탐색 전략
당신이 ‘을’이라고 자처하는 순간, 고연봉 기업 인터뷰 주도권은 영원히 ‘갑’에게 넘어간다. 이직은 구걸이 아닌 상호 탐색이다. 당신은 연봉만큼 회사를 평가할 권리가 있다. 업계 인지도, CEO 비전, 현금 유동성을 기준으로 입사할 회사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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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기업 리스트를 만들다
숙제는 이제 임 차장에게 돌아갔다. 갭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대상 기업 리스트를 이 실장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다만 막연하게 그런 리스트에 해당되는 기업에 팀원들이 이력서를 제출하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는 정도다.
임 차장은 노련하게 엑셀표에 나름대로의 분석과 함께 최종 대상 기업 리스트를 만들어 들고 왔다. 이 실장은 임 차장을 비롯하여 차장급 대표진만으로 구성된 팀원들 다시 회사 옆 커피숍을 찾았다. 엑셀표를 그대로 해석한다면 이 중 어떤 기업도 팀과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가능성은 가능성에 불과할 뿐이다. 이 실장은 뭔가 행동에 옮겨야 할 단계에 도달해 있다.
이 자리에 모인 대표진은 이제 이 실장이 무엇을 실행할지 느끼기 시작한다. 임 차장의 숙제가 빨리 마무리된 것은 더 이상의 설명이 의미 없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최종 대상 기업 리스트가 있다면 어떤 기업으로 이직했으면 좋겠다는 우선순위가 매겨질 것이 분명하다.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어쩌면 직감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직감은 이 실장이 지시한 바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저절로 얻게 된 부산물이며 전부터 이미 형성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이 실장과 팀 대표진은 특유의 방법론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있다. 업계의 인지도, 연봉 수준 및 처우, CEO의 능력과 비전, 현금 유동성 등 나름대로의 기준이 설정되고 엑셀표로 만들어진 리스트에 기업 하나 하나에 번호를 매겼다. 이제 이 대상 기업을 대상으로 어떻게 이직 작전을 펴는가 하는 대과제만 남아 있다. 승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을’도 ‘갑’을 평가한다
대상 기업이 최종적으로 압축되자 이 실장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몇몇 팀원들은 벌써 이직하기도 하고 또 일부는 개인 사업을 준비하는 팀원도 있다. 그래서 다만 이 실장이 준비하고 있는 이직 작전에 동참하고 있는 팀원들만 더욱 초조할 뿐이다. 최근 들어 이 실장 얼굴 보기도 힘든 형편이다. 이 실장은 연일 외부 미팅에 참석하고 간간히 그 결과를 팀원들에게 들려주기도 하지만 아직 희망적인 메시지는 들을 수 없다.
이 실장은 리스트에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소문을 추적하고 정서를 파악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분석은 이론적인 것이었고 이 실장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이론의 틀에 담기지 않은 경험과 진실을 찾아 다니는 일이다.
우선순위에 선정된 기업의 임원진과 식사를 하기도 하고 가벼운 미팅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무엇이 그리 바쁜지 팀원이 듣게 된 것은 뜻밖의 일 때문이었다.
어느날 이 실장은 우선순위에 올라와 있는 기업 중 한 곳의 담당자와 회의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데 화가 많이 나 있다. 팀원들이 그 이유를 묻자 이 실장은 갑과 을에 대한 지론을 펼치기 시작한다.
“컨설팅을 시작하기 전 고객사에서 컨설턴트를 평가하고 회사를 평가하지만 마찬가지로 컨설턴트도 기업을 평가합니다. 이 기업이 컨설팅을 받을 자세가 되어 있는지, 컨설팅 결과를 받아들여 기업 혁신에 적용할 것인지, 그 결과 장기적으로 컨설팅을 진행한 회사와 컨설턴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사이가 될 수 있는지 평가합니다. 그런 기업을 만나야 컨설턴트는 밤을 새며 일을 하더라도 보람을 느낍니다. 단지 컨설턴트의 지식과 시간을 돈과 바꾸었다고 생각하는 기업은 딱 그만큼만 전수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인터뷰를 진행할 때도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은 이 지원자가 좋은 인력인지, 우리 회사에 입사하면 보탬이 될지, 최소한 연봉 이상의 값을 할 후보인지를 묻게 됩니다. 하지만 인터뷰하는 동안 그 지원자 역시 이 회사가 내가 일할 만한 회사인지, 업무 프로세스는 잘 갖추어져 있는지, 경영진이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회사를 꾸려 가는지 평가를 하게 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임원이 자신의 회사가 평가 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인터뷰는 상호간 진행하는 것이며 양쪽 모두에게 의사결정권이 있습니다. 갑만 을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을도 갑을 평가합니다.”
이 실장은 지금 입사할 회사를 찾고 있지만 입사할 회사를 찾는다는 말로는 부족함이 있다. 이 실장 혼자서 다른 회사로 자리를 찾는다면 아마 이처럼 복잡한 절차를 가져갈 필요가 없다. 혼자만이라면 그는 컨설팅업계가 아닌 CMO나 외국계 회사로 전진할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혼자라면 높은 연봉과 편안한 미래를 지향하는 것은 모든 직장인의 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실장이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수 명의 팀원이 함께 입사하여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고 시장을 열어 나갈 기회를 제공할 회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 실장이 화가 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실장 혼자라면 갑이 을만 평가하면 충분하지만 지금은 갑이 을을 평가하고 을 역시 갑을 평가해야 하는 상황이다.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고 시장을 열어 나갈 토양을 제공하지 못하는 회사라면 이 실장과 그 팀원이 합류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애초에 후보로 선정한 기업은 기업이 부족한 바를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실장과 팀원들이 그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실장과 막 미팅을 마친 회사는 갑으로서 이 실장을 인터뷰했지만 그 회사는 을(이 실장)이 갑(기업)을 평가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 실장이 원했던 것은 인터뷰가 아닌 미팅이었고, 입사를 위한 미팅이 아니라 향후 회사의 사업 방향과 가능성을 함께 논의할 상호 탐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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